우리나라가 산업화와 고도성장으로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나아지며, 이에 영향을 받아 소아청소년들의 신장(height) 발달 상태 또한 이전보다 많이 좋아지게 되었다. 이런 추세에 따라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장 발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소아청소년과 개원가에서는 성장호르몬 결핍성(growth hormone deficiency) 저신장증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성장호르몬 비결핍성(non-growth hormone deficiency) 저신장증에도 성장호르몬 치료를 많이 하게 되었다[1].
1985년부터 유전자재조합법을 이용해 성장호르몬(recombinant human growth hormone)이 다량으로 만들어졌고,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질환의 소아들에게 신장 증가 효과, 대사 조절 효과, 심폐 기능의 회복 등을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주사용 성장호르몬 제제는 성장호르몬 결핍성일 경우, 일반적으로 0.5 IU/kg/week 용량을 일주일에 6-7회에 나누어 자기 전에 피하주사를 하고, 특별한 유전질환이 있거나 가족성 저신장증, 체질성 성장지연 아동일 경우에는 이보다 고용량을 사용하며, 치료 기간과 효과는 개개인에 따라 다양하다[2].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시행되는 호르몬 치료이기 때문에, 당대사 이상, 여성형 유방, 갑상선 호르몬 변화, 신부전, 대퇴골두 골단 분리증, 이차 종양 발생, 상기도 폐쇄 및 호흡부전으로 인한 사망과 같은 다양한 부작용이 있으며[2,3], 드물게 가성뇌종양(pseudotumor cerebri)도 유발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에 본 저자는 기존의 증례를 고찰하고[4-7], 기저질환 없는 소아에서 성장호르몬 치료 중 발생한 특발유두부종 1예를 보고하고자 한다.
증례보고
11세 여아가 성장호르몬 치료 중에 발생한 시력저하와 암순응 장애를 주소로 타원을 방문하였고, 성장호르몬 관련 특발유두부종이 의심되어 성장호르몬 치료를 중단한 4주 뒤 경과 관찰을 위해 본원으로 방문하였다. 출생 당시 특이사항이나 발달장애, 유전질환, 내분비계 질환, 또는 뇌종양 과거력은 없으며, 타원에서 시신경유두부종을 진단받을 당시, 체질성 성장지연(constitutional growth delay)으로 소아청소년과에서 3개월 동안 성장호르몬 피하주사(Zomacton®; FERRING Pharmaceutical, Seoul, Korea)를 3.4 IU/day 용량으로 받고 있었다.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 시작 2개월 전에 시행 받은 시력검사 및 근시 교정을 위한 안과 정기검진에서 양안 최대교정시력 우안 20/20, 좌안 20/20, 정상 안저 소견을 보였고 시신경에서도 특이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다(Fig. 1).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 3개월째에 최대교정시력은 우안 20/25, 좌안 20/25으로 이전 시력보다 경미하게 떨어졌으며 어두운 곳에서 평소보다 암순응이 지연되고, 양안이 일시적으로 뿌옇게 보이는 증상(bilateral transient visual obscurations)을 호소하였으며, 안저검사상 양안에 경도의 유두부종이(grade 1+, C-shaped peripapillary halo with a spared temporal margin) 새롭게 관찰되었다(Fig. 2). 간헐적인 무기력감 외에 전신 증상은 없었고, 두통이나 구역질, 이명, 경부강직 등의 신경과적 증상 또한 없었다.
즉시 성장호르몬 치료를 중단하였고, 4주 후 본원으로 내원하였을 당시 양안 최대교정시력은 우안 20/20, 좌안 20/20, 안압은 우안 12 mmHg, 좌안 11 mmHg (by I-care rebound tonometer)이었다. 3개월간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를 받은 후 발생한 암순응 장애와 일시적 시야 흐림 증상은 호전된 상태였다. 세극등검사상 검결막에 있는 약간의 충혈을 제외하고, 각막이나 전방, 유리체에 이상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동공반사(light reflex) 및 상대구심동공운동장애(relative afferent pupillary defect)검사에서도 정상 소견을 보였다.
안저검사에서는 4주 전과 마찬가지로 양안의 시신경부종 모양이 관찰되었고 시신경 빛간섭단층촬영에서는 시신경내의 저반사 영역이 보이고 드루젠의 고반사 영역이 관찰되지 않았으나, 주변 망막신경섬유층 두께가 확연히 증가되지 않았고 저반사 영역에 약한 고반사 영역의 경계 부위가 있었다(Fig. 3). 추가로 시행한 색각검사(Hardy-Rand-Rittler test)에서는 우안에서 경도의 적록 색각 이상을 보였지만 정상 범위 내로 판정되었다(Fig. 4). 약간의 시신경부종은 남아 있으나, 특별한 증상 호소 및 시각이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아 성장호르몬 투여 중단 지속 하에 경과 관찰을 하기로 하였다.
고 찰
소아의 특발성 두개내압상승은 10만 명당 1명 미만으로 발생하는 매우 드문 질환이고[8], 이 중에서도 1985년 이후로 사용되기 시작한 유전자재조합 성장호르몬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는 아직 국내에서는 아직 보고된 적이 없으며, 해외에서는 1992년에 Otten [9]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다. 두개내압이 상승하면 그 압력으로 인해 망막의 축삭형질흐름(axoplasmic flow)에 이상이 생겨 본 증례에서와 같이 시신경유두 부위의 신경섬유와 기질에 부종이 발생하며, 성인에서의 두개내압상승은 두통, 구역, 구토, 의식저하 등의 전형적인 신경과적 증상을 보이나, 사춘기 이전의 소아 환자들은 대부분 무기력증, 짜증(irritation), 피로감, 식욕감퇴와 같은 비특이적인 전신 증상을 주소로 병원을 방문하기 때문에[10] 환아가 경미한 시력저하, 일시적 시야 흐림, 생리적 암점 확대와 같은 초기 시신경유두부종과 관련된 증상을 호소하지 않으면, 소아청소년과 개원가에서 일차 진료로 감별해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뇌압상승 징후를 보이는 환자에서 출혈, 종양, 수두증(hydrocephalus)이나 뇌혈관 기형과 같은 두개내압상승을 유발할 만한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 경우를 특히 가성뇌종양이라고 하며, 소아의 경우 내분비계 질환, 약물, 바이러스 감염, 비타민 A 과잉증, 백혈병, 유전질환이 원인이 된다[11]. 이런 경우 해당 원인질환만 해결하면 두개내압상승은 호전되나, 증상이 심하거나 신경계의 비가역적인 손상 위험이 있으면 steroid, acetazolamide 등의 약물 치료나 optic nerve sheath fenestration, Cerebrospinal fluid shunting과 같은 수술적 치료를 같이 하기도 한다[10].
특발성 두개내압상승의 병태생리는 어느 한 가지 이론으로만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합리적인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다. 비만(obesity)으로 뇌척수액의 정맥환류(cerebral venous drainage) 감소, 여성호르몬 분비 이상, 나트륨이뇨펩타이드(natriuretic peptide)의 뇌척수액내 농도 변화, 그리고 중추신경계 세포막에서 물의 수동 수송을 담당하는 특정 aquaporin (AQP)의 발현 조절 가설들이 있다[12].
Malozowski et al [13]은 뇌척수액 내의 성장호르몬 증가로 국소적 인슐린유사성장인자-1 (insulin-like growth factor-1)의 생성과 담당 수용체 활성화를 증가시켜 이것이 뇌척수액의 생성 증가를 유발한다는 가설을 제시했지만, Obinata et al [14]의 연구에서는 유전자재조합 성장호르몬 투여로 뇌척수액의 생성에는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뇌척수액의 흡수가 불안정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므로 중추신경계의 AQP 막단백질이 성장호르몬에 의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기전을 통해 하향조절되어 뇌척수액의 흡수가 줄어 두개내압이 상승된 것으로 추론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여러 해외 증례에서는[4-7] 환아들이 내분비계통의 이상을 유발할 만한 심각한 유전질환 또는 내과적 질환이 있는 경우에서 성장호르몬 치료 도중 발생한 가성뇌종양에 의한 유두부종이었고, 따라서 여러 가지 약물에 동시에 이환되거나 증상 호소 전까지 성장호르몬 제제에 이환된 기간이 1년 이상으로 매우 길거나, 또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중단해도 증상 호전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후향적 증례 연구의 특성상 약물 노출 전후 안저를 비교하기 어려워 성장호르몬 제제와 시신경유두부종과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확인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 있다고 사료된다. 하지만 본 증례에서는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는 환아가 일상적인 정기 검진을 하던 안과에서 무력감과 일시적 시야흐림을 호소했고, 성장호르몬 투여를 시작하기 전과 투여 시작 3개월 후 첫 증상 발현 시의 기본적인 안과 검사 및 안저 사진 비교로 경미한 시력저하와 명확한 시신경유두부종 발생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성장호르몬 제제 투여를 중단하고 곧바로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해외 증례와는 큰 차이점이 있다.
과거력상 특이 사항이 없었으며, 본원 내원 당시 성장호르몬 제제 투여를 중단한 지 이미 4주가 지났고, 환아가 호소하던 증상은 호전된 상태라서 보호자가 침습적이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검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소아과적 전신질환을 배제하기 위한 혈액검사 및 특정 영상검사를 시행하지 못했고, 요추 천자를 통해 뇌척수액의 압력을 확인하거나, 자기공명영상 같은 영상검사로 뇌척수압의 증가를 유추하지는 못한 것이 본 증례의 한계점으로 사료된다. 그렇지만 증상 발현 초기에 무력감과 같은 전신 증상을 호소하였고[10] 과거력 및 신경학적 검사에서 다른 두개내압상승의 의심 징후가 없었다는 점, 양안 시신경부종을 유발할 만한 다른 안과적 질환과 관련된 증상 및 징후가 없었다는 점[15], 무엇보다도 증상이 성장호르몬 투여 후 발생하였고 중단과 함께 빠르게 소실된 과거력 및 성장호르몬 치료 전후의 안저검사 비교로 미루어 보아 기존의 가성유두부종(pseudopapilledema)이 있던 상태에서 성장호르몬 치료로 인해 경도의 유두부종(mild papilledema)이 발생했던 것으로 추정하였고, 향후 본 환아의 시신경부종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경과 관찰을 할 예정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이전 국내 보고가 없었던 체질성 성장 지연으로 유전자 재조합 성장호르몬 제제 투여 중 발생한 시신경부종 증례에 대해 기존 해외 증례와 비교하여 보고하는 바이다.